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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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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070 고문헌 작년 가을에 정퇴(停退)한 제주목(濟州牧)의 환자(還上)는 내년 가을까지 그대로 정퇴하고, 이전곡(移轉穀) 중 유작조(留作條)를 우심재(尤甚災)인 동리(洞里)는 보릿가을까지 전량을 정퇴하고 지차(之次)인 동리는 절반을, 초실(稍實)인 동리는 3분의 1을 역시 정퇴하고, 평역 군관(平役軍官)의 신역미(身役米)와 노비의 신공미(身貢米), 남정(男丁)의 대동미(大同米)는 절반을 정퇴하고, 시노비(寺奴婢)의 추쇄(推刷)는 내년 가을을 기다려 거행하고, 군병의 조련은 우선 그대로 정지하고 노비 추쇄와 빚 징수는 내년 가을까지 막아 주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07
6069 고문헌 제주(濟州)의 치패선(致敗船)에 탔다가 익사한 사람들에게 휼전(恤典)을 제급(題給)하고, 이어 표류하는 사람들의 종적을 찾아서 보고하도록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40
6068 고문헌 한성부가 탐라(耽羅)의 호구(戶口)와 백성 숫자를 올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09
6067 고문헌 전 제주 판관(濟州判官) 홍이조(洪履祚) 등은 함사(緘辭)로 추고(推考)하고, 전 정의 현감(旌義縣監) 남속(南涑)은 논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17
6066 고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유사모(柳師模)가 진휼을 마친 것에 대해 급히 장계한 데 대해, 녹봉을 덜어 진휼에 보탠 수령과 원납(願納)한 섬사람들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15
6065 고문헌 희정당에서 지평 남속(南涑)을 소견하고 이어 체차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05
6064 고문헌 의금부의 시수(時囚) 성종인(成種仁)ㆍ남속(南涑)ㆍ이동식(李東埴)ㆍ한승유(韓昇裕)를 감처(勘處)한 뒤 풀어 주고, 이경윤(李卿尹)과 부종인(夫宗仁)을 용서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08
6063 고문헌 이후로 제주의 연분 성책(年分成册)은 전례에 따라 장본(狀本)에 후록(後錄)하고, 청한 조항들은 모두 시행하도록 허락하며, 갑인년(1794, 정조18)의 정퇴미(停退米) 598섬은 특별히 탕감(蕩減)하고, 목사 유사모(柳師模)는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121
6062 고문헌 한성부(漢城府)가 탐라(耽羅)의 호구(戶口)와 백성의 수를 조사한 별단을 바쳤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112
6061 고문헌 제주 판관(濟州判官) 조경일(趙敬日)과 대정 현감(大靜縣監) 고한록(高漢祿)에 대해 내직과 외직을 막론하고 승진시켜 서용하고, 작년에 점락(點烙)할 때에 마적(馬籍)의 원래 수에서 숫자가 빈 마필은 해를 물려 목자(牧子)에게서 나누어 징수하며, 이어 제주 목사(濟州牧使) 유사모(柳師模)를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116
6060 고문헌 이조와 병조가 서울과 지방의 포폄(褒貶)의 등급을 매긴 계본(啓本)을 열어 보았다고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118
6059 고문헌 전라 감사 이득신(李得臣)이 제주의 표류되었다가 돌아온 사람인 조인안(趙仁安) 등을 문정(問情)하였다고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1년 (1797)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