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중의 입고 멱서리 짜는 노인 (1960년대)
갈중의 입고 멱서리 짜는 노인 (1960년대)
갈중의 입고 감저 모종에 물 주고 있는 농부(1960년대)
갈중의 입고 '말축굿'을 연행하고 있는 심방(1981)
갈옷 입고 지게를 지고 가는 제주 대정리 농부(1914년 5월)
갈중의 입고 구덕 짜는 노인(1960년대)
갈중의 입고 밧줄 드리는 노인(1960년대)
갈적삼과 갈중의 입고 비대죽 이삭을 털고 있는 노인(1994)
갈중의 입고 낭테로 밭을 다지는 농부(1960년대)
갈적삼과 갈중의 입고 소를 모는 테우리(1960년대)
갈적삼과 갈중의 입고 테우 위에서 자리돔 잡는 어부(1960년대)
한 아낙네가 윗도리에 ‘갈적삼’ 입고, 아랫도리에 ‘갈몸빼’ 입고 공동수도에서 ‘허벅’에 물을 긷고 있다. ‘갈적삼’은 감물을 들인 윗도리로 입는 홑옷이고, ‘길몸빼’는 감물을 들인 여자들이 쉽게 통으로 입을 수 있는 고무줄 홑바지이 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라산 어승생댐을 비롯한 대규모 저수지가 건설되어 마침내 제주도에 상수도가 들어오게 되었다. 마을 공동수도가 마을에 설치되었지만, 제주도 여성들의 ‘허벅’에 물을 긷고 운반하는 노동은 계속되었다.(사진해설: 고광민)
저 멀리 비교적 나이 든 아낙네는 하얀 무명적삼 입고, 아랫도리에 ‘갈몸빼’ 입고 ‘곰베’로 흙덩이를 바수고 있고, 가까이 비교적 나이 어린 아낙네는 검은 물 들인 무명적삼 입고, 아랫도리에 ‘갈몸빼’ 입고 ‘끄슬퀴’를 끌며 땅거죽을 펴고 있다. 적삼은 윗도리에 입는 홑옷이고, ‘갈몸빼’는 감물을 들인 여자들이 쉽게 통으로 입을 수 있는 고무줄 홑바지 이다. ‘곰베’는 흙덩이를 깨뜨리거나 씨앗을 뿌린 뒤에 흙을 덮는 데 쓰는 도구인 곰방메라는 말이다. ‘끄슬퀴’는 길쭉 길쭉한 잎나무를 수없이 함께 엮어 부채 모양으로 만들어, 뿌린 씨를 묻고 밭이랑을 고르는 데 쓰는 도구라는 말이다.(사진해설: 고광민)
저 멀리 갈옷을 차려입은 남편인 듯한 남성은 말을 몰며 ‘방아’를 돌리고 있고, 가까이 있는 부인인 듯한 여성은 이삭을 빗자루로 쓸어 올리고 있다. 여성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윗도리에 ‘갈적삼’ 입고, 아랫도리에 ‘갈몸빼’를 입었 다. 수건은 머리에 쓰는 헝겊이고, ‘갈적삼’은 감물을 들인 윗도리로 입는 홑옷이고, ‘길몸빼’는 감물을 들인 여자들이 쉽게 통으로 입을 수 있는 고무줄 홑바지이다. ‘방아’는 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사람, 말, 소 따위로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 따위를 찧는 연자방아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방아’를 ‘방이’, ‘방애’, ‘레’라고도 일렀다. 제주도 ‘방아’는 제주도의 원초적인 탈곡(脫穀)과 도정(搗精)의 도구는 아니 었다. 『증보 탐라지』(增補耽羅誌, 김영길 번역본)가 편집된 조선조 영조 41년(1765)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에는 ‘ 방아’가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 ‘방아’는 제주도가 아닌 육지부에서 전승되는 연자방아처럼 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마소 또는 사람이 끌게 하여 겉곡을 찧고 알곡을 빻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방아’에서, 조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일, 보리의 겉껍질을 벗겨 보리쌀을 만드는 일, 밭벼나 나락의 껍질을 벗겨 찹쌀과 볍쌀을 만드는 일, 가루를 만들려고 알곡을 빻는 일 등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조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일과 보리의 겉껍질을 벗겨 보리쌀을 만드는 일은 거의 마소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수가 많았다.(사진해설: 고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