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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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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23950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082 고문헌 부사직(副司直) 심낙수(沈樂洙)가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08
6081 고문헌 영중추부사 채제공(蔡濟恭)이 최소(崔熽)를 처분한 일로 차자를 올려 스스로 인책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11
6080 고문헌 희정당(熙政堂)에서 약원(藥院)의 도제조(都提調)와 좌상과 우상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召見)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8
6079 고문헌 정의 현감(旌義縣監) 남속(南涑)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5
6078 고문헌 탐라에서 올린 전최 계본(殿最啓本)을 열어 보았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1
6077 고문헌 탐라(耽羅)의 수신(守臣)은 진곡(賑穀)을 순조롭게 운송한 상황 및 고루 분급한 내용을 계속해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1
6076 고문헌 신방(新榜) 안형직(安衡稷)은 첨지에 단부(單付)하고, 탐라(耽羅)의 문신 이태상(李台祥) 등은 먼저 주서에 부직(付職)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7
6075 고문헌 제주 목사 이우현(李禹鉉)이 본도 3개 읍(邑)의 진휼을 마치고 급히 장계한 데 대해, 모환(麰還) 대신으로 거두는 양태(凉臺 갓양태)와 해곽(海藿 미역)은 장계에서 청한 대로 정퇴(停退)해 주고, 전에 내린 제주 목사를 시상하라는 전지는 삭제하며, 원납인(願納人)인 전 현감 고한록(高漢祿)은 대정 현감(大靜縣監)으로 특별히 차임하고 이어 군수의 이력(履歷)을 쓰게 하며, 홍삼필(洪三弼)과 양성범(梁聖範)은 순장(巡將)으로 올려 차출하라고 명하고, 이어 정리곡(整理穀)을 양태와 해곽으로 대신 징수하는 것은 일절 거론하지 말아서 모든 백성에게 자궁(慈宮)의 은혜가 널리 미친 바를 알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37
6074 고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이우현(李禹鉉)이 정의 현감(旌義縣監) 남속(南涑)을 파출(罷黜)하였다고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7
6073 고문헌 전 정언 변경우(邊景祐)가 상소하여 제주(濟州)에 사창(社倉)을 설치하기를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려 도백과 목사를 시켜 이치를 따져 장계로 보고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제주목(濟州牧)은 3개 읍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굶주려 죽은 자들을 제사 지내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30
6072 고문헌 각 해당 관사에 격쟁 원정(擊錚原情) 18도(度)를 판하(判下)하였다. 남옥(南玉)의 원통함을 풀어 달라고 한 일은 그대로 시행하고, 김성탁(金聖鐸)의 죄명은 용서하도록 하며, 이세풍(李世豐)과 정경달(丁景達)은 풀어 주고, 이지권(李之權)은 엄히 신칙하여 다시 번거롭게 호소하지 못하게 하고, 허복(許澓)의 원정은 시행하지 말고 처분을 기다릴 것이며, 이영(李榮)의 족보(族譜)에 대해서는 어영대장 이한풍(李漢豐)으로 하여금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게 하고, 박성휘(朴聖輝)에 대해서는 호조 판서 이시수로 하여금 판결해 주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9
6071 고문헌 헌납 민사선이, 이택수의 지속과 민홍섭의 여러 아우를 이배하거나 풀어 주라고 한 명 및 김성탁(金聖鐸)의 죄명을 용서하라고 하신 명을 거두어들이기를 청하고, 이어 사간 윤서동(尹序東)을 출사(出仕)하게 하기를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