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전은 제주해녀 문화의 역사, 명칭, 터전, 채취물, 물옷과 도구,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담아낸 해녀종합보고서다.
물질은 해녀들이 바닷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말한다. 물질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자연적 조건과 장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자연적 조건이
바다에서의 해녀 물질은 육상에서 하는 농사와는 다르다. 물질은 수온·수압·풍파 등 환경적 영향으로 매우 힘들고 위험하다. 해녀의 물질은 특별한 호흡
16세기 초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 풍속이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곳곳에서 신에게 제사한다고 하였다. 매년 정월에 마을에서 무당이 제사하고, 2월에는 연등이라는 의례를 벌
해녀가 물질해서 따는 채취물은 소라와 전복, 미역 따위와 물이 썰 때를 이용하여 갯가에서 잡는 고둥류, 게류 등이 있다. 채취물은 해녀들의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고 우리들의
물질 도구와 물옷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와 옷을 말한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2) <병담범주>에 보면 물질 광경과 더불어 ‘테왁&r
속담은 옛날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짧은 문장으로 비유된 말이다. 대개는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나 교훈, 경계하고 금해야 할 일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주해녀는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발간된 다양한 사진집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 내 사진가로 서재철의 《제주해녀
잠수굿은 잠수들이 벌이는 굿을 말한다. 잠수는 해녀이다. 예부터 물질을 하는 여성들은 해녀보다 잠수와 잠녀를 본래적인 호칭으로 여겼다. 따라서 자신들이 하는 굿도 잠수굿이나
1876년 개항되자 제주해녀들은 두 가지 변화를 겪었다. 조선시대의 ‘출륙금지’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출가하며 경제적 수익을 얻게 되었다. 일본 어민
한국사에 있어 중세는 대체로 고려를 전후로 하는 시기를 지칭하며 근세는 19세기 말 근대 이전의 조선시대를 일컫는다.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잠수해 전복·미역 등의 해산물을 채
해신당海神堂은 해안 마을에서 해녀 물질과 어부 어로 활동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당이자 어업 관련 여러 신당들을 두루 이르는 명칭이다. 해신당은 해안 마을 주민들이
잠수 작업은 과거부터 사람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바닷속에서 힘들게 해산물을 채취하는 광경은 경탄 과 애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수필에도
제주해녀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신규 해녀를 육성하기 위하여 진료비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조례.
제주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해녀 양의헌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톳에 갖은 채소를 넣고 된장으로 간하여 무친 반찬.
국내외에서 펼쳐진 제주해녀들의 항일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제주MBC의 다큐멘터리.
백중인 음력 7월 보름 무수기 때 농부의 늘어진 불[환睾]을 보려고 구멍에 숨었던 소라가 밖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여름 농사를 끝낸 농부가 백중을 맞아 해산물을 따러 바닷가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 층을 이룬 유적.
전복 내장인 ‘게웃’으로 담근 젓.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빈손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바다가 식품의 원천이라는 말이다. ‘바릇가다’는 ‘해산물을 따러 바다로 가다.&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