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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1832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980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들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4년 (1790) 64
979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약원(藥院)의 입진(入診)을 행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5년 (1791) 58
978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약원 제조, 대신,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6년 (1792) 65
977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76
976 고문헌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제주(濟州) 대정현(大靜縣)에서 이전(移轉)해 오는 양태(凉臺 갓양태)와 감곽(甘藿 미역)을 실은 배 1척이 치패한 데 대해 급히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84
975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약원 제조 및 비변사 유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69
974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大臣), 각신(閣臣), 약원 제조 및 비변사 유사 당상, 제주 어사(濟州御史), 정의 현감(旌義縣監)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73
973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 시원임 각신(時原任閣臣), 약원 제조 및 정례 당상(定例堂上), 전 수원 부사(水原府使)를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82
972 고문헌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 및 어사 심낙수(沈樂洙)와 접위관(接慰官) 윤제동(尹悌東)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85
971 고문헌 선전관 양협(梁埉)ㆍ심유조(沈有祖)ㆍ이인달(李仁達)은 병조 판서로 하여금 교관(郊館)에서 개좌(開坐)하여 크게 위의(威儀)를 베풀고 곤(棍) 30도(度)를 엄하게 쳐서 섬에 충군(充軍)하게 하고, 이동선(李東善)ㆍ이주봉(李周鳳)ㆍ김준악(金峻岳)ㆍ유상두(柳相斗)ㆍ허빈(許彬)ㆍ김진정(金鎭鼎)ㆍ원영린(元永麟)ㆍ전우성(田遇聖)은 모두 엄하게 곤을 쳐 태거(汰去)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72
970 고문헌 위유안핵순무시재 어사(慰諭按覈巡撫試才御史) 심낙수(沈樂洙)를 특별히 승진시켜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삼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폐막(弊瘼)은 편의에 따라 바로잡고, 창고를 설치하는 문제는 묘당에서 내게 물어 처리하게 하며, 제주도 유생(儒生)의 입격한 시권(試劵) 중 수석을 차지한 사람이 지은 것을 외각(外閣 교서관)에서 인쇄하여 보내게 하고, 무과(武科)에 응시한 사람 중 급제(及第) 자격을 준 사람과 문과(文科)에서 입격한 사람은 내년 봄에 올려보내 동시에 창방(唱榜)할 수 있도록 하며, 전(前) 목사(牧使) 이철운(李喆運)은 의금부로 잡아오거든 엄히 형추(刑推)하여 공초(供招)를 받은 뒤에 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고, 수령의 학대를 도와 백성을 못살게 군 장교와 아전은 곤장을 쳐서 엄히 다스리며, 양지온(梁之蘊)은 더욱더 엄히 처리하고, 구렁을 전전하다 죽어 간 사람이 가장 많은 곳에 고아와 과부를 모아 놓고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며, 3개 읍(邑)의 기민(饑民)은 마음을 다해 구제하고, 안핵(按覈)에 대한 장본(狀本)은 시원임 대신(時原任大臣)에게 돌려가며 보여 주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70
969 고문헌 제민창(濟民倉)을 강진(康津)이나 해남(海南)으로 옮겨 설치하는 것이 편리한지 여부를 도신이 상세히 탐문하여 보고하게 하고 보고가 올라오면 다시 내게 물어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