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창(濟民倉)을 강진(康津)이나 해남(海南)으로 옮겨 설치하는 것이 편리한지 여부를 도신이 상세히 탐문하여 보고하게 하고 보고가 올라오면 다시 내게 물어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역사 > 제주사일반
비변사가 아뢰기를,
“제주 어사(濟州御史) 심낙수(沈樂洙)가 장계에서 거론한 제민창을 옮겨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묘당에서 상께 여쭈어 처리하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그 장본(狀本)을 가져다가 보니, ‘제민창을 강진이나 해남 등의 지역에 옮긴 뒤에 섬 백성이 왕래하며 수납(受納)하게 하고, 각 고을 수령이 주관하여 주고받게 하며, 또한 도신이 총괄하여 살펴 먼저 미역을 바치고서 곡물을 받도록 하거나 먼저 곡물을 받고 미역을 바치도록 한다면, 조천(朝天)과 화북(禾北) 등의 포구(浦口)에서 남당(南塘)과 고달도(古達島) 등의 포구까지 대양의 뱃길이 일직선으로 마주보고 있어서 왕래하는 뱃사공과 뱃사람들이 모두 뱃길에 익숙하여 치패될 우려가 없을 것이며, 아침에 곡물을 실은 배가 출발하여 저녁이면 도착하는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