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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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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23950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214 고문헌 호조 참판 이의직(李義直)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95
6213 고문헌 행 부사직 이병정(李秉鼎)과 정범조(丁範祖)가 상소한 데 대해, 내가 상소를 가지고 있겠다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93
6212 고문헌 지평 유악주(兪岳柱)가 피혐 계사를 올린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106
6211 고문헌 선전관 양협(梁埉)ㆍ심유조(沈有祖)ㆍ이인달(李仁達)은 병조 판서로 하여금 교관(郊館)에서 개좌(開坐)하여 크게 위의(威儀)를 베풀고 곤(棍) 30도(度)를 엄하게 쳐서 섬에 충군(充軍)하게 하고, 이동선(李東善)ㆍ이주봉(李周鳳)ㆍ김준악(金峻岳)ㆍ유상두(柳相斗)ㆍ허빈(許彬)ㆍ김진정(金鎭鼎)ㆍ원영린(元永麟)ㆍ전우성(田遇聖)은 모두 엄하게 곤을 쳐 태거(汰去)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120
6210 고문헌 검교직각 서영보(徐榮輔)에게 유시(諭示)하여 고달도(古達島)의 선소(船所)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제주(濟州)로 가는 배가 곡식을 싣고 출발하거든 돌아오는 길에 연읍(沿邑)을 자세히 살핀 다음 보고 들은 것을 조정에 돌아온 후 일일이 보고하게 하고, 이어 삼남(三南)에 은택을 베풀라는 내용으로 어제 내린 전교는 가는 곳마다 효유(曉諭)하고 만일 시행했어야 하는데 아직 시행하지 못한 일 가운데 조정에 돌아올 때까지 지체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면 의견을 붙이고 사리에 맞게 논하여 속히 보고하라고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96
6209 고문헌 판의금부사 홍양호(洪良浩)를 삭직(削職)하고, 동지의금부사 이한풍(李漢豐)ㆍ이의필(李義弼)ㆍ김이익(金履翼)을 체차하고, 승지 김면주(金勉柱)ㆍ이조원(李肇源)ㆍ송민재(宋民載)를 파직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3
6208 고문헌 사간 이현도(李顯道)를 흑산도(黑山島)에 정배(定配)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3
6207 고문헌 검교직각 이만수(李晩秀)와 남공철(南公轍)을 추자도(楸子島)에 정배(定配)하였다가 곧이어 용서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99
6206 고문헌 호남 암행 어사 정만석(鄭晩錫)이 복명하여, 중희당(重熙堂)에서 소견(召見)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08
6205 고문헌 각 해당 관사에 대해 상언(上言) 37도(度)를 판하(判下)하였다. 문간공(文簡公) 박상(朴祥)에 대해 특별히 불천위(不遷位)로 허락하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며, 문열공(文烈公) 조헌(趙憲)도 일체로 제사를 지내 주도록 하고, 도배(島配)된 죄인 이후전(李後傳)의 어미와 처(妻)에게 배소(配所)로 가서 만나는 것을 허락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9년 (1795) 117
6204 고문헌 호남 도신이 거론한 진도군(珍島郡)과 영암군(靈巖郡) 소안도(所安島)의 여섯 가지 폐단을 바로잡겠다는 장본(狀本)에 대해 비국이 회계(回啓)한 것은 모두 아뢴 대로 시행하게 하고, 진도 목장의 송전(松田) 명색은 혁파하고 소안도에서 궁방(宮房)에 바치는 것도 모두 호조에 세금으로 내고 그 나머지 토지에서 나오는 것은 섬사람들에게 내주라고 명하였다. 이어 전후로 아뢴 것에 대해, 도신으로 하여금 비답에서 하교한 것과 폐단을 바로잡은 사건을 써서 군아(郡衙), 목관(牧館), 도해(島廨)에 게판(揭板)하고 5년 동안 해마다 연말에 바로잡은 여러 조항의 이해(利害)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고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32
6203 고문헌 형조가 격쟁인(擊錚人)의 원정(原情)으로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0년 (1796)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