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8 |
고문헌 |
부안(扶安) 등 5개 고을에서 제주(濟州)로 들여보내는 곡물 중에 불에 타고 물에빠뜨려 잃어버린 것은 이전조(移轉條)로 시행하여 규례대로 급대(給代)하라고 명하고, 이어서 영운 차사원(領運差使員)의 죄는 지금은 일단 보류해 두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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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04 |
2867 |
고문헌 |
성정각에서 제주 판관(濟州判官) 박정원(朴鼎元)을 소견하고, 이어 박정원은 전직(前職)에 잉임(仍任)하도록 하고, 제주 판관의 후임은 구전 정사(口傳政事)로 가려 차임(差任)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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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15 |
2866 |
고문헌 |
전라 감사 서정수(徐鼎修)와 제주 목사(濟州牧使) 유사모(柳師模)가, 별도로 내린 진휼 물자가 무사히 도착하였으며 섬 안 3개 읍의 모맥(牟麥 보리)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고 급히 장계한 데 대해, 유사모는 민정(民情)을 더욱 잘 살펴 다시 나에게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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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08 |
2865 |
고문헌 |
성정각에서 우의정 윤시동(尹蓍東), 품사 당상(稟事堂上) 심이지(沈頤之)ㆍ이시수(李時秀)ㆍ서유대(徐有大), 함경 감사 조상진, 평안 감사 박종갑(朴宗甲)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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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22 |
2864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비변사의 품사 당상(稟事堂上) 이주국(李柱國)ㆍ심이지(沈頤之)ㆍ윤사국(尹師國)ㆍ김재찬(金載瓚)ㆍ이시수(李時秀)ㆍ심환지(沈煥之)ㆍ조진관(趙鎭寬)ㆍ이면응(李冕膺)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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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17 |
2863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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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128 |
2862 |
고문헌 |
전라 병사 신홍주(申鴻周)가 제주(濟州) 3개 읍의 무과(武科) 초시(初試)에서 입격(入格)한 사람에 대해 급히 장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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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131 |
2861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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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124 |
2860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여러 승지와 제주 판관(濟州判官) 조장한(趙章漢)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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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118 |
2859 |
고문헌 |
제주(濟州) 3개 고을의 유민(流民)들을 찾아내어 농한기가 되면 원적지(原籍地)로 돌려보내라고 삼남의 도신에게 신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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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2년 (1798) |
107 |
2858 |
고문헌 |
평안도 관찰사는 현충사(顯忠祠)에 나아가 ‘만상의 의사 백대호 등 21인〔灣上義士白大豪等二十一人〕’이라고 위패(位牌)에 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와 한 말의 술을 쓰는 것을 정식으로 삼으며 황명(皇明)의 유민(遺民) 임인관(林寅觀) 등 95인에 대해 모두 위패를 만들어 함께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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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2년 (1798) |
103 |
2857 |
보고서 |
청각음각화 옆문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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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연구센터 |
제주학연구센터 |
2016 |
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