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각(誠正閣)에서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
역사 > 제주사일반
정원이 아뢰기를,
“비변사 낭청이 와서 말하기를 ‘오늘은 빈청(賓廳)의 일차(日次)입니다만 대신(大臣 이병모(李秉模))이 신병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하여, 전교하기를,
“백성에 대해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 계획하는 데 있어 근래에 나아와서는 간언(諫言)을 올리고 물러가서는 다스릴 방책을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현시점에서 양남(兩南) 연해(沿海)의 농사 또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 달에 여섯 차례 여는 빈대(賓對)와 날마다 여는 비변사의 좌기(坐起)를 대신이 거행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는데, 병을 조섭하느라 그렇다고 들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몸을 추스를 수 있다면 탈품(頉稟)을 들이지 말라고 묘당(廟堂)에 말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