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문화 대백과사전


입어권 협정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가해녀들과 경남지역 어민들 사이에 빚어진 입어권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체결된 입어 관련 협정.


내용

1912년 경상남도 울산 어장 분쟁 사건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전 기간에 걸쳐 전개된 입어권 분쟁으로 인해 해녀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해녀조합 형태의 조직과 입어 관련 협정들이 체결되었다. 이들 조직과 협정의 이면에는 제주 출가해녀들의 피땀 어린 생존권 투쟁의 역동적인 삶과 문화가 배어 있다.
시기별로 입어권 분쟁의 실상과 그 협상의 산물인 입어 협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1910년대 입어권 분쟁과 1913년 해녀입어협정: 1912년 5월 우뭇가사리 채취기에 제주해녀들이 울산군으로 들어오자 지역민들이 해녀들의 입어를 거부하여 제주해녀와 지역 어민들 간에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입어문제 분쟁의 시초이다. 이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1913년 해녀입어협정이 체결되었으며 울산군 내에 지역 어민들의 어업권을 관리하는 어업조합이 설립되었고 제주해녀들은 이 어업조합에 입어료를 납부하여 입어권을 인정받았다.
②1920년 해녀어업조합의 설립과 입어권 분쟁, 도지사 간 협의사항: 1920년 4월 출가해녀들의 보호와 구제를 위해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설립되었다. 부산의 출가해녀들은 해녀조합의 조선해조주식회사 예속을 거부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경상남도·전라남도 도지사 간에 협의사항이 도출되었다. 해녀조합의 인가를 얻은 해녀에 한해서 입어가 허용되었으며 해조회사는 해녀조합의 자립 에 경제적 협조를 하였다. 결국 해녀조합이 성장하여 해조회사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③1923~1924년 출가해녀들과 지역어업조합과의 분쟁, 1925년 해녀입어협정 체결: 1923년 기장지역의 폭행 사건 1924년 부산에서의 분쟁으로 인해 여러 차례 협상이 진행된 끝에 1925년 2월 해녀입어협정이 체결되었다. 제주 출가해녀들은 제주해녀조합뿐만 아니라 지역의 어업조합에도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입어료는 인상되었다.
④1925년 이후 출가해녀들의 불만 고조, 1932년 신협정안 조인: 제주도 해녀들의 불리함을 감안하여 전라남도 당국에서 1925년 협정의 개선을 요구한 결과 1932년 4월 20일 새로운 협정안이 조인되었다. 제주도를 떠나서 경남지역으로 호적을 옮긴 해녀들은 온전히 경남지역 어업조합에 속하게 하고 제주도 해녀로서 2년 이상 경남지역에 거주한 자들은 경남 어업조합과 제주해녀조합의 자격을 같이 취득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1930년대 초반까지 경남지역으로 호적을 옮기지 않은 제주 출가해녀들에게 경남지역 어업조합원과 해녀어업조합원의 자격을 같이 인정하고 해조 판매와 관련해서도 해녀조합의 지분을 인정하였다.
⑤1937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의 해소, 해녀입어협정 의 유명무실화: 1936년 12월 22일 해녀어업조합과 어업조합이 합병하여 제주도어업조합으로 출범하게 되면서 1937년 5월경에는 경상남도에서 해녀어업조합이 갖고 있던 해녀입어협정은 소멸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징과 의의

일제강점기 해녀들의 입어권 투쟁과 해녀조합 설립, 출가해녀 수 급증에 따른 입어 협정 체결과 지역 어업조합의 출가해녀 통제 등 출가해녀를 둘러싸고 매우 다양한 상호 관계망이 만들어졌다. 이후 태평양전쟁과 해방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제주 출가해녀 입어권 문제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참고 문헌

강대원, 《제주잠수권익투쟁사》, 제주문화, 2001.
김수희, <일제 시대 남해안어장에서 제주해녀의 어장이용과 그 갈등 양상>, 《지역과 역사》 21, 부경역사연구소, 2007.
박찬식, <해녀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출가해녀 입어 및 해녀어업조합 관련자료 해제>, 《해녀박물관 소장 자료 번역집》, 제주학연구센터, 2019.


필자

박찬식(朴贊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