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2 |
고문헌 |
전 정언 변경우(邊景祐)가 상소하여 제주(濟州)에 사창(社倉)을 설치하기를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려 도백과 목사를 시켜 이치를 따져 장계로 보고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제주목(濟州牧)은 3개 읍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굶주려 죽은 자들을 제사 지내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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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19년 (1795) |
101 |
2951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약원 제조 심이지(沈頤之), 부제조 조상진(趙尙鎭) 및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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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0년 (1796) |
104 |
2950 |
고문헌 |
도목 정사에 대해 하비(下批)하였으며, 경원 부사 한광식(韓光植)을 개차하고 가자(加資)한 것은 도로 거두어들이지 말며, 전 남원 부사(南原府使) 박지원(朴知源)과 전 전생서 판관 윤광호(尹光濩)는 모두 잉임하며, 잉임한 정의 현감(旌義縣監) 이동환(李東煥)의 후임을 가려 차출하며, 전주 영장(全州營將)을 차출하여 경주 영장(慶州營將) 백동운(白東運)과 서로 자리를 바꾸어 부임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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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1년 (1797) |
97 |
2949 |
고문헌 |
평안도 관찰사는 현충사(顯忠祠)에 나아가 ‘만상의 의사 백대호 등 21인〔灣上義士白大豪等二十一人〕’이라고 위패(位牌)에 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와 한 말의 술을 쓰는 것을 정식으로 삼으며 황명(皇明)의 유민(遺民) 임인관(林寅觀) 등 95인에 대해 모두 위패를 만들어 함께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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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2년 (1798) |
116 |
2948 |
고문헌 |
사복시 제조, 개건도감(改建都監) 당상, 국장도감(國葬都監) 당상과 낭청, 경기 감사, 호조 판서 및 총융사(摠戎使)를 흥정당(興政堂)에서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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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즉위 (1776) |
128 |
2947 |
고문헌 |
성정각에서 내의원 부제조 홍국영과 승지 정민시(鄭民始)를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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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원년 (1777) |
116 |
2946 |
고문헌 |
성정각에서 승지 홍국영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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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원년 (1777) |
110 |
2945 |
고문헌 |
제주목(濟州牧)이 포작(鮑作) 등 여섯 가지 역(役)을 변통할 것을 청한 데 대해, 시행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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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19 |
2944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승지 홍국영(洪國榮)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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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14 |
2943 |
고문헌 |
경외(京外)의 전최(殿最)를 개탁(開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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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14 |
2942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승지 홍국영(洪國榮)을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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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26 |
2941 |
고문헌 |
성정각(誠正閣)에서 승지 홍국영(洪國榮)과 제주 목사(濟州牧使) 김영수(金永綬)를 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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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
한국고전종합DB |
정조2년 (1778) |
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