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잡영
耽羅雜詠
정의
조정철의 총 33수에 이르는 연작 한시.
내용
조정철(趙貞喆, 1751~1831)은 본관은 양주, 자는 성경, 태성, 호는 정헌, 대릉으로 정조 시해사건과 연루되어 1777년 유배형을 받았다. 29년의 유배살이 중 27년을 제주에서 머물렀다. 조선시대 최장기 유배인이다. 그의 문집으로는 《정헌영해처감록》이 있는데 문집 전체가 유배 생활에 대한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문집에는 제주의 풍속과 문물을 담은 시가 적지 않다. 이 중 <탐라잡영耽羅雜詠>은 제주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느낌에 따라 기술한 작품이다. 이 중 17번째 시에서 제주 잠녀의 작업복인 소중의에 대해 언급되었다.
조정철은 제주 유배에서 해배된 후 관직 생활을 했다. 1811년 2월 무장현감에서 제주목사로 임명되었고 다음 해인 1812년에 체임되었다. 부임 기간 동안 동성과 서성의 외곽을 개축하고 해자 밑에 12과원을 설치하였다.
조정철의 <탐라잡영> 33수는 숫자나 내용면에서 제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조정철은 풍속과 풍토에 대해서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제주 관원들에 대해서도 아주 흥미로운 기록들을 남겼다.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실제 유배객이나 제주 민중들이 관원들에게 어떠 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탐라잡영> 33수 중 제17수에서 시인은 잠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潛女衣裳一尺短 잠녀의 옷 한자로 짧아
赤身滅沒萬頃波 알몸으로 만경 파도에 무자맥질하네
邇來役重魚難得 요즈음 일은 버겁고 어물은 잡기 어려운데
便扑尋常幾處衙 관아 몇 곳에서는 심상하게 채찍질하네
시인은 잠녀의 옷, 알몸으로 들어가는 잠수 작업, 관아의 독촉을 받는 괴로움을 표현하였다. 알몸으로 바닷물에 들어가 작업하는 잠녀의 모습과 과도한 부역 때문에 고통을 받는 모습을 그렸다. 이 시에서는 제주 잠녀의 작업복인 소중의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 시에는 “잠녀는 천으로 작은 바지를 만들어 그 음부를 가리는데 사투리로 ‘소중의小中衣’라고 한다. 알몸으로 바닷속을 들고 난다.”라는 주석이 있다. 시인은 잠녀의 의복을 ‘소중의’라고 하는데, 이렇게 이름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이 문헌이 처음이다. 잠녀의 소중의뿐만 아니라 물 긷는 소녀, 성안의 일반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대체로 여성들의 복식에 대해서는 제대로 옷을 갖추어 입지 않은 것과 치마를 입지 않은 것을 비판적으로 언급하였다.
특징과 의의
옛 문헌에서 잠녀의 고된 삶을 표현하는 경우는 매우 많다. 그런데 이 작품처럼 잠녀의 옷인 ‘소중의’를 언급한 것은 조정철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박동욱, <옛 문헌에 나타난 제주, 제주문화; 정헌 조정철의 유배 한시 연구-홍랑과의 사랑을 중심으로>, 《온지논총》 17, 온지학회, 2007.
박동욱, <두 사람의 유배인과 한 명의 제주 목사-조완, 조정철, 김영수>, 《문헌과 해석》 50, 태학사, 2010.
박동욱, <조정철의 「탐라잡영」 연구>, 《동양한 문학연구》 32, 동양한문학회, 2011.
필자
김새미오(金새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