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회

청와대를 방문한 제주도 잠수회장단_1966_《제주시수협 100년사》
이칭
잠수회
정의
해녀들로 구성된 어촌계 자치 기구.
내용
제주도 어느 마을이나 어촌계에 속한 해녀들은 해녀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녀회는 ‘잠수회’로도 불린다. 마을 어촌계가 마을 어장 입어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녀들은 어촌계뿐 아니라 그 산하의 자발적 자치기구인 해녀회에 가입해야 한다. 어촌계별로 할당된 마을 어장의 경계가 공고화되면서 어장 관리 주체인 어촌계, 특히 물질 작업을 수행하는 해녀회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해녀들 간의 경쟁이 가열될 경우 마을 어장의 효율성 자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큰 만큼 생산량과 시기 등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해녀공동체 차원에서 마을 어장의 효율적 관리가 진행되려면 공동관리의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다수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적이다. 제주도 어촌계 상당수는 자체 규약을 만들어 마을 어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고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4회 제주해녀물질대회_귀덕리_2010_한라일보사 제공
해녀들의 물질은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캐는 개별적 노동이면서도 마을 어장을 함께 가꾸어야 하는 공동 작업이다. 바다는 늘 위험이 도사린 곳이어서 함께 입어하고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은 같이 물질한 해녀들과 상의해 가면서 같은 조건으로 판매한다. 해녀회에서는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안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을 신축하는 데 도움을 준 사례가 많다. 바다의 한 구역을 정해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마을 일에 애쓰는 이장에게 주는 ‘이장바당’,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육성회비를 충당해 주는 ‘학교바당’ 등도 있었다.
1950년 성산면 온평초등학교 전 교실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온평리 해녀들은 마을의 한쪽 바다를 ‘학교바당’ 으로 삼아 미역을 채취한 수입금 전부를 학교 건립 자금으로 헌납하였다. 온평초등학교는 온평리 해녀회 덕분에 1951~1958년에 걸쳐 학교를 재건할 수 있었다. 해녀들은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치르며 마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치 기구인 해녀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더욱 단단히 결집하면서 강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처럼 해녀회는 국가 수산정책의 영향을 받는 어촌계 의 하부 자치 기구이면서 마을 여성들의 자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녀회는 단순한 친목 단체와는 달리 기능이 매우 다양하고 마을 안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뚜렷하다. 해녀공동체와 마을 내 크고 작은 일들을 수평적 합의에 따라 결의하고 빈틈없이 실행하며 물질과 일터인 바다와 관련된 모든 일을 해녀회에서 관장한다. 바닷속 잡초를 베어내는 일부터 어장을 감시하는 일까지 모두 해녀회가 주관한다.
해녀가 없는 다른 지방의 어촌계와는 달리 해녀가 어촌계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제주도 어촌계에서는 해녀들의 발언권이 크다. 또한 마을에 따라 해녀회장이 어촌 계장을 겸직하기도 하여 다른 지역과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참고 문헌
고은솔, <제주해녀문화의 지속가능한 전승방안 연구>, 한국전통문화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
김영돈, 《한국의 해녀》, 민속원, 1999.
노우정, <제주 해녀공동체의 특성과 지속가능한 마을어장 관리>, 제주 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1.
안미정, <바다밭[海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전통의 정치: 제주도 잠수마을의 나잠과 의례>, 《한국문화인류학》 39집, 한국문화인류학회, 2006.
필자
진선희(秦先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