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컷 제주도 무형유산│제주테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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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테우는 탐라시대로부터 전승되어온 것으로 보이며, 테, 터우, 테위, 터위, 떼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테우는 18세기 초 이형상 목사가 ‘검석속립(劍石束立)’이라 표현한 제주도 해안지역의 거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배로서,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제작하여 바다밭 기반의 어업, 해조류 거름을 이용한 농업에 이르기까지 제주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생명줄’과 같은 배였다. 제주의 테우는 고대 탐라시대로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출륙금지령 이후 더욱 활성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목민관 이익태의 '지영록'(1696)에는 김녕 삿갓오름 연못에서 순채를 채취할 때 테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세기 중후반 간행된 '제주계록' 1855년 기록에는 하도리 유생 고형현 등이 테우(槎船)를 타고 해초 채취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전복되어 익사한 사고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제주견문록'에도 별도포 부근에 있는 수많은 테우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주도세요람' 등에도 테우에 대한 여러 기록이 나타난다. 1953년 간행된 '증보탐라지'에는 “한라산 정상으로부터 4km 내외는 진백지대(眞柏地帶)이며, 이 지대 이하는 철쭉지대로 수십만 평이다. 그 아래 4km 내외는 가로로는 구상나무[拘香木] 지대인데 본도의 독특한 떼배[筏船]의 재료”라고 소개하고 있어 전통적인 제주 테우의 원자재가 구상나무였음을 알려준다. 20세기 들어 1910년 '한국수산지' 기록에 따르면, 자리돔 그물이 282개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그만큼의 테우가 존재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후 기록된 테우의 수는 1937년 533척, 1939년 541척에서, 1982년 51척, 1986년 32척으로 급감하였고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테우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강원도 삼척, 경상북도 울진과 울릉도, 남해안 일부에서 어로작업에 활용되어 왔는데, 주로 미역 채취, 손꽁치낚시, 근해 고기잡이 등이다. 내륙 지역 테우는 크기가 작고 미역 채취 등에 활용되는 한정된 사용범위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제주에서는 미역 채취, 비료용 해조류 채취, 자리 거리기(자리돔 잡기), 갈치낚시 등 연안 고기잡이, 멜후리그물(멸치 후리그물), 부속섬 산물의 이동 등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아카이브 바로가기: http://jst.re.kr/iha/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