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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뉴스] 제주 바당엔 해녀, 땅엔 돌챙이…지켜야 할 무형문화 유산

  • 2025-12-24
  • 조회 15
원문기사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56029

③ 문서현 기자의 이슈보다 사람
제주 1호 돌담쌓기 명인 돌챙이 조환진의 20여년
묵묵히 지켜온 돌담의 가치, 유네스코를 향한 도전
"돌과 돌이 하나 되듯, 사람도 이어져야 합니다"

2025. 12. 13. 국제뉴스(문서현 기자)

13일 오후,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돌담처럼 조환진 돌챙이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말투에는 과장도, 꾸밈도 없었다. 돌담을 닮은 사람이었다.[사진=문서현 기자]

13일 오후,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돌담처럼 조환진 돌챙이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말투에는 과장도, 꾸밈도 없었다. 돌담을 닮은 사람이었다.[사진=문서현 기자]

(제주=국제뉴스) 문서현 기자 = 제주 바다에 해녀가 있다면, 땅에는 돌챙이가 있다.
바람을 막고, 밭을 지키고, 사람의 삶을 이어온 제주의 돌담. 그 돌담을 묵묵히 쌓아 올리며 사라져가는 시간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제주 1호 돌담쌓기 명인, 돌챙이 조환진(52)이다.

"제주의 돌은 현무암이라 마찰이 커요. 돌과 돌이 딱 달라붙죠. 그래서 시멘트 없이도 하나의 담이 됩니다. 그렇게 제주의 돌담은 오랫동안 사람과 밭을 지켜왔어요. 저는 그래서 제주의 돌이 평화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13일 오후,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돌담처럼 조환진 돌챙이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말투에는 과장도, 꾸밈도 없었다. 돌담을 닮은 사람이었다.

조환진씨가 처음부터 돌챙이의 길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의 돌담 인생은 1999년,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시작됐다. 분재예술원에서 처음 돌담을 쌓았다. 돌챙이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현장에 투입됐고, 그렇게 3년을 돌과 함께 보냈다.

결정적인 순간은 여행에서 찾아왔다. 청년 시절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던 날, 세 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창밖에는 들판과 산만 펼쳐졌다. 조 씨는 그때 깨달았다. 제주에서 당연하게 보던 돌담이, 제주에만 있는 풍경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요. 아, 제주의 돌담은 그냥 담이 아니구나. 누군가는 지켜야겠구나."

돌챙이의 작업 모습.[사진=조환진 돌챙이]

돌챙이의 작업 모습.[사진=조환진 돌챙이]

그 다짐이 삶이 됐다. 사진을 배우러 간 김영갑 갤러리에서도 우연히 마당 돌담을 쌓게 됐고, 그렇게 돌담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2008년부터 돌담 쌓은 일은 해온 돌챙이 조환진씨 17여년이 흐린 지금 그는 제주를 대표하는 돌챙이 명장이 됐다.

2023년, 제주에 지역 명장 제도가 생겼고, 조 씨는 두 번의 도전 끝에 '돌담쌓기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명장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개인의 명예 때문이 아니었다.

"제가 명장이 되고 싶었던 건, 돌담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명장이 되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았다. 15년 이상 종사 경력은 기본이고, 봉사활동, 자격증, 각종 경진대회 수상 경력까지 요구됐다. 더 큰 문제는 돌담쌓기에는 공식 자격증조차 없다는 현실이었다.

조 씨는 직접 움직였다. 2023년 민간자격증 '제주돌챙이(쌓기 석공)'를 만들어 산림청에 등록했고, 그 결과 2023년과 2024년 각각 4명씩 자격증 취득자가 배출됐다. 사라져가는 기술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13일 오후,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돌담처럼 조환진 돌챙이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말투에는 과장도, 꾸밈도 없었다. 돌담을 닮은 사람이었다.[사진=문서현 기자]

13일 오후, 제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온 돌담처럼 조환진 돌챙이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의 말투에는 과장도, 꾸밈도 없었다. 돌담을 닮은 사람이었다.[사진=문서현 기자]

돌담쌓기는 전부 시멘트 없이 이뤄진다. 겹단쌓기, 외담쌓기 등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이런 전통 방식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육지 돌은 맨지락해서 흙이나 시멘트를 써야 해요. 하지만 제주의 돌은 달라요. 현무암이라 미끄러지지 않죠. 이게 제주의 돌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돌담을 지키기 위한 행정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조 씨가 관련 부서를 찾기 위해 관공서를 수차례 오갔지만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해당 부서가 없다"는 말이었다.

문화정책과에서는 '돌은 문화정책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친환경농정과에서는 '밭담만 농업유산으로 관리한다'는 이유로 손을 놓았다. 돌문화공원과 세계유산본부 역시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다.

결국 제주의 돌담은 어느 부서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에 조 씨와 몇몇 돌챙이들은 직접 움직였다. '제주돌담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민간조직'을 꾸렸고, 이 움직임은 변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제주돌문화공원이 나서면서 제주 돌담쌓기는 지난 9월 22일 제주도 지방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첫 관문을 넘은 것이다.

돌챙이 조환진씨가 직접 그린 돌담아파트[사진=조환진 전시]

돌챙이 조환진씨가 직접 그린 돌담아파트[사진=조환진 전시]

제주돌문화공원은 202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조 씨는 유네스코 등재가 돌담 보전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등재가 돼야 예산이 나오고, 그래야 보전이 시작됩니다. 돌담쌓기는 무형유산이기 때문에 전수 활동과 기술 전승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현재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돌담쌓기가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제주가 등재된다면 아시아 최초다.

"지금까지 신청한 곳은 다 됐어요. 우리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돌담을 알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조환진 돌챙이의 바람은 단순하다. 제주의 돌담이 오래도록 제주에 남는 것.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돌챙이 어르신들의 기술과 철학이 기록으로, 전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사진=문서현]

조환진 돌챙이의 바람은 단순하다. 제주의 돌담이 오래도록 제주에 남는 것.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돌챙이 어르신들의 기술과 철학이 기록으로, 전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사진=문서현]

조환진 돌챙이의 바람은 단순하다. 제주의 돌담이 오래도록 제주에 남는 것.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돌챙이 어르신들의 기술과 철학이 기록으로, 전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제주의 돌담은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손에서 손으로 쌓아온, 제주 전체가 담긴 박물관입니다. 바다에 해녀 삼촌들이 있다면, 땅에는 돌챙이 삼촌들이 있어요. 둘 다 제주의 가치를 지켜온 소중한 유산입니다."

조환진 돌챙이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돌을 쌓는다. 행정의 빈틈 속에서 사라져가던 돌담은 그의 손에서 다시 의미를 얻고 있었다.

민영뉴스통신사 국제뉴스/startto241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