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 제주4.3 피해 생존 여성들의 목소리 모두 남성의 것이었다
- 202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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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제4회 학술대회 개최
2025. 7. 4. 제주의소리(김찬우 기자)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은 4일 오후 제주대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제4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은 4일 오후 제주대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4.3의 기억과 국가폭력의 문화 표상 : 목소리들과 신체들’을 주제로 한 제4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기록되지 않은 4.3 피해 생존 여성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목소리들’ 상영회와 대담에 이어 영화 내용을 중심으로 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증언할 수 없는 입과 감각하는 몸’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서강대 배주연 교수는 국가폭력에서 여성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구조에 대한 견해를 밝혀 주목을 끌었다.
특히 여성의 성적 피해 경험이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 돼 침묵 당한 현실을 짚었다.
배 교수는 “마을에서 있었던 성폭력 사례를 증언하는 것은 공개 증언을 했던 생전 홍난선을 제외하면 모두 남자들의 것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여성이 발화하지 못할 때 이를 대신하는 것은 언어를 가진 남성들이었고 여성들의 말하기는 몸짓과 한숨, 침묵으로 표현된다”고 말했다.
또 “여성들의 피해 경험이 남성들의 언어로 대신 말해짐으로써, 이는 남성들의 피해 경험 혹은 남성화된 집단의 피해 경험으로 바꿔 말해진다”며 “그러나 여성들의 고통받는 몸은 집단 서사 안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흔적으로 발화된다”고 피력했다.
더불어 “여성의 성적 피해 경험은 그 자체로 집단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 돼 침묵 당했다”며 “연구자 김상숙은 점령군에 의해 가해지는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력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해 점령지 복속을 확인하는 상징적 도구로 여겨진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위 빨갱이가 된 시민 중 여성은 또 다른 빨갱이를 재생산할 위협을 가진 몸이기에 더 위험한 몸으로 간주됐다”며 “그래서 임신한 여성의 발가벗겨진 시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팽나무에 매단 것은 주민들을 복속시키는 수단으로 쓰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서강대 배주연 교수와 제주학연구센터 이정원 박사, 사회를 맡은 황임경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배 교수는 살아 돌아온 여자들에 대한 의심이 ‘환향녀’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할 수 없고 남성들의 말을 통한 집단의 피해 서사로 귀속된다.
배 교수는 “영화에서 여성의 생환을 전하는 ‘살아 돌아온 여자가 있대’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은 단순히 소문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침묵을 요청하는 수행문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여성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증언한 부분에 주목했다.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여성들의 자부심과 이를 피력하는 것은 고난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언어라고 주장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 질서 속 끊임없는 의심을 받으며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근면성실한 삶의 자세를 무고함의 증거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이때 여성들의 몸은 고통을 충분히 담고 있는 몸이자 자신의 무고를 증명해야 하는 몸”이라고 말했다.
베 교수는 “여전히 4.3에서 여성들의 피해 경험은 말하기 어렵다. 말을 해도 들을 수 있는 담론구조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녀들은 말할 수 없다”며 “기록되지 못한 말들과 들려지지 못한 침묵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더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관련해 토론에 나선 한양대학교 김청강 교수는 “매우 고단하고 지독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온 그들의 생애 자체가 무고함을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주정에 매우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존자들이 ‘말로 다 못할 이야기’, ‘짐승처럼 일했다’는 등 말을 한 것은 자신들의 무고함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존재의 형식, 혹은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는 배 교수의 발표에 이어 ‘4.3 서사의 행위자, 음식 : 영화 지슬과 포수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한 제주학연구센터 이정원 박사의 발표와 ‘공공선이라는 가면’을 주제로 한 한국방송통신대 김재형 교수의 발표가 이뤄졌다.
각 발표 토론은 한양대 김청강 교수와 제주대 이혜령, 제주대 윤한결이 맡았다. 3부에 걸친 학술대회 마지막 순서에서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한편 제주대 일반대학원은 지난 2023학년도 2학기부터 4.3융합전공 과정을 신설, 운영 중이다. 4.3학 후속 연구자를 양성하고 연구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마련된 석박사 양성과정으로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사회교육학부, 사회학과, 정치외교학과, 건축공학과 등이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