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제주도 종합개발사 다시 쓴다
- 202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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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원 박사, 국가기록원서 1951년 '제주도 개발 종합보고서' 확인
이승만 정부 시절 공장이전, 전력·농축수산 등 종합개발 착수
2025. 6. 26. 제민일보(김봉철 기자)
제주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개발이 1951년부터 체계적으로 추진된 사실이 확인됐다. 고기원 박사(제주곶자왈공유화재단 연구소장)가 최근 국가기록원에서 확보한 1951년 4월 7일 '제주도 개발 종합보고에 관한 건' 문건으로, 6·25전쟁 와중에도 제주도가 정부 주도의 종합적인 계획 아래 개발이 진행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정부 수립 후 제주도 개발계획 수립의 역사가 박정희 정권보다 앞선 이승만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와 미군정 합동 개발 체계
문건에 따르면 제주도 개발사업은 1950년 8월 5일 정부가 기획처·상공부·ECA(미국 주한경제협조처) 직원으로 구성된 '제주도 개발조사단'을 제주에 파견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조사단은 그해 제주도 수산, 농업, 축산, 공업 전반에 걸쳐 개발계획 수립을 추진했지만 연합군의 서울 탈환 등으로 지연됐다.
1951년 1월에는 중공군의 서울 재침입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수도를 옮겼고, 제주도 개발 추진 지연이 민간과 정부에서 문제화 돼 즉각 '제주도개발단(CDM)'이 설립되고 1월 7일 단장이 취임했다.
제주도개발단 내에 상공부·농림부·재무부 대표와 제주도지사, ECA 대표 등이 참여하는 '제주도 개발위원회(CDC)'가 구성됐다. 단장은 정문기, 위원으로는 3개 부처 대표와 김충희 제주도지사, 린드멘 ECA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CDC는 2월부터 43일간 11차례의 위원회 회의, 12회의 추진위원회·연구위원회를 통해 제주 지역의 산업 전반에 대한 구체적 개발안과 자금 집행 계획을 수립했다. ECA 자금과 국내 은행 융자를 바탕으로 당시 수십억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점은 정부의 제주개발 의지가 구상 수준을 넘어 본격 실행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공장 이설과 도내 공장 부흥
보고서는 제주도를 산업기반 지역으로 육성하기 위한 공업 분야 개발계획을 상세히 담고 있다. 우선 한국전쟁 와중 본토에서 이설된 7개 주요 공장(동양방적, 세계고무공장, 조일고무공장, 대성목재, 제주식품공업, 조선피혁, 협신제과)에 총 15억5200만원의 공장 건설 자금이 책정됐다.
별도로 도내 기존 공장 6곳(대동식품공업, 한림제빙공장, 한림전분공장 등)에 대한 보수 및 설비 보강을 위해 1억3490만원, 한라산 국유림을 중심으로 한 임도 개발에 1억6000만원이 책정됐다.
특히 공장이설 지역이 한림, 외도, 제주읍 일대로 분산됐고 방적, 고무, 제재, 제빙, 조선 등 다양한 산업군이 포함된 점에 대해 개발단은 제주의 경제부강은 물론 제주의 경제적 지위를 국가적으로 급속히 제고한다는 계획으로 설명했다.
제주도 개발의 핵심 기반인 전력 공급 문제는 따로 독립된 계획으로 추진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1951년 2월 제16차 한미재정경제위원회(ESC) 회의를 통해 22억2200만원 규모의 제주전력개발자금 융자를 결정했다.
특히 전기공사 책임 주체를 상공부와 개발단 중 어디로 둘 것인지, 자금 배분을 제주 현지에서 처리할 것인지 중앙에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돼 있었던 점은 제주 전력사업이 단순한 지역 단위 개발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 사업으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
△농축수산업 전방위 개발
수산업은 제주 경제의 전통적 기반 중 하나로, 정부는 이 분야에도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ESC는 1950년 9월 제주도 수산용 어선 34척 구입을 위한 6억8360만원과 일반 어민용 어구 구입비 2억원을 승인했다.
또한 어촌 마을별 수산계 조직 확대 등 지도자들의 전문화를 위한 조치를 도지사에게 건의하는 등 단순한 어구 지원을 넘어 수산업 전반에 대한 체계화 노력이 동반됐음이 확인됐다.
농축산 부문에서도 제주도의 자연조건을 활용한 개발계획이 구체적으로 수립됐다. 특히 한라산 기슭의 구릉지를 이용한 축산 기반 조성을 위해 1억7100만원 규모의 종축장 설치계획이 담겨 있으며, 이는 당시 기준으로도 대규모 투자인 동시에 장기적 산업구조 개편을 목표로 한 사업이다.
이와 함께 소나 돼지가 없는 농가에 각각 4억5400만원, 4600만원을 들여 5개년간 축우 2600두, 자돈 4600두를 보급해 가축 증식 기반을 마련하려는 계획도 포함됐다. 육지에 비해 열악한 가축 품질을 발전시키기 위한 종축장에도 1억7175만원이 책정됐다.
△수리조합·관개시설 공사 시행
보고서는 또 당시 남제주군 남원면 하례리 일대를 대상으로 한 관개시설 설치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약 100정보에 달하는 농지에 수리조합을 조직해 연간 500% 이상의 쌀 생산 증대를 기대하는 사업으로, 총 소요자금은 2억3411만원에 달했다. 이 사업은 국고보조 없이 전액 융자로 추진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보고서는 이 사업이 단순한 식량 증산을 넘어서 전후 제주지역 이재민 구호 효과까지 고려한 다층적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기원 박사는 "정부계획에 따라 실제로 고살리물을 이용한 하례리 저수지 건설사업이 1952년부터 진행됐지만 저수지에 물이 고이지 않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며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경제적 고난을 겪던 마을 주민들은 저수지 공사 노임을 받아서 생계를 잇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중앙 정부가 6·25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제주를 전략적 자립형 거점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개발계획과 자금 집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제주도 개발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제주도 개발의 시작점을 1950년대초로 재정립하는 한편 앞으로 지역개발사를 재구성하고 제주정체성 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