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濟州) 3개 읍의 수령에 대해서는 앞으로 성적을 고과(考課)하여 출척(黜陟)을 특별히 행하고, 본도(本島) 사람 이형수(李亨秀) 등에 대해서는 해당 목사에게 실제 행적을 상세히 물어 수용(收用)하되 삼기(三歧)에 대해 등급을 나누어 논열(論列)하여 장계로 보고하게 하고 장계가 올라오거든 내게 물어 처리하라고 명하였다.
역사 > 제주사일반
이조가 아뢰기를,
“제주 어사(濟州御史)의 별단을 가져다가 보니, 제주의 생원(生員) 오점(吳霑)은 ‘상당히 학문과 지식이 있어서 섬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출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였으나, 뚜렷이 드러난 행실이 없으므로 감별하여 녹용(錄用)하는 것은 거론할 수가 없습니다. 제주 판관(濟州判官) 홍이조(洪履祚)는 ‘순박하고 조심성이 있는 것은 가상하나 쇄신한 것이 부족하였습니다.’라고 하였으니, 거론한 말 속에 칭찬하는 말과 폄하하는 말이 섞여 있습니다. 대정 현감(大靜縣監) 정운제(鄭運躋)는 ‘작년에 대대적으로 진휼할 때 굶주려 죽은 사람이 매우 적었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순포(純褒)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의 현감(旌義縣監) 남속(南涑)은 ‘시종(侍從) 출신의 수령으로서 아전과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으니, 치적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