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만에 사진ㆍ신문ㆍ구술로 마주한 태풍 ‘사라’
-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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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만에 사진ㆍ신문ㆍ구술로 마주한 태풍 ‘사라’
제주학연구센터,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 발간
-태풍 ‘사라’호를 기록한 故 홍성흠 선생 사진 17점 공개
-태풍 ‘사라’호, 사진ㆍ신문자료ㆍ구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
□ 태풍 예보 소식이 들리더라도 제주 사람들은 ‘사라’호 태풍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제주 사람들은 ‘사라’호 태풍을 떠올리고, 역대 최고의 태풍이라고 기억하는 것일까? 그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나왔다.
□ 제주학연구센터(센터장 김순자)가 제주학총서 72호로 발간한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이 그것이다.
□ ‘사라’호 태풍은 65년 전인 1959년 추석 명절에 불어닥친 태풍이다. 당시 순간 최대풍속 33.5㎧로 제주 북동쪽으로 북상하며 239㎜가량의 폭우를 전역에 쏟아내었다. 태풍 ‘사라’호는 약 12시간여에 걸쳐 몰아쳤다. 그 피해로 수많은 가옥이 무너지고, 적지 않은 인명이 격류에 휩쓸리는 등 제주에 많은 사상자와 피해액을 남겼다. 제주에서만도 사상자 137명, 가옥 피해 14,721동, 선박 피해 333척 등 당시 32억 5,276만 5,345환(531억 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기록하였다.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하여 국가와 도는 가옥과 어선 복구, 식량 확보 등 복구 대책 마련하고, 민생 안정을 위한 방안을 내었다. 전국적으로는 의연금 모금 운동을 벌여 당시 85만 환이라는 재해 복구비를 충당하였다. 한편, 안타까운 이재민의 소식을 들은 전 국민과 해외동포는 푼푼이 모아둔 돈과 의류, 학용품을 보내오는 등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 이 책에서 태풍 ‘사라’호에 관한 내용을 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사라호 피해 상황 사진 17점을 비롯하여 신문자료, 구술자료 등을 토대로 소개하고 있다. 모두 4부로 되어 있다. 1부 <왜 지금, 우리는 ‘사라’호 태풍인가>, 2부 <사진으로 보는 ‘사라’호 태풍-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기록들>, 3부 <활자에 새긴 ‘사라’호>, 4부 <입말로 풀어낸 ‘사라’호>가 그것이다.
□ 1부 <왜 지금, 우리는 ‘사라’호 태풍인가>는 ‘사라’호 태풍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사진이 수집된 경로부터 태풍 발생, 피해 상황, 복구 대책, 수재의연금과 구호 활동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 2부 <사진으로 보는 ‘사라’호 태풍-故 홍성흠 선생이 남긴 기록들>은 설명을 곁들인 ‘사라’호 태풍 화보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물바다를 이룬 산지천과 동문천 일대, 파손된 어선끼리 뒤엉킨 제주항, 제주 시가지에서 무너져 내린 전주와 간판, 그리고 뿌리채 꺾인 가로수, 뼈대만 남은 주정공장 창고 등이다. 사진 대부분은 도민 사회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사라’호의 위력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다.
□ 故 홍성흠(1928~2022) 선생은 제주시 이도리 출신으로 1959년 국도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제주지부 주재기자로 10여 년간 기자 생활하였다. 1961년 발생한 ‘경주호 침몰사고’ 취재로 언론취재 특종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문인으로, 언론인으로, 교육자로서 제주 사회를 위해 다양한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 3부 <활자에 새긴 ‘사라’호>는 ‘사라’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신문자료를 소개한 면이다. 여기서는 《제주신보》(1959~1960년)의 기사 가운데 ‘사라’호 태풍에 관한 기사 31개를 발췌하여 정리하였다. 내용은 ‘사라’호 태풍 예보부터 태풍 피해와 조사, 복구 방안 등에 관하여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당시 신문자료와 이를 현대국어로 옮겨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 4부 <입말로 풀어낸 ‘사라’호>는 ‘사라’호를 겪었던 27명의 어르신을 만나 채록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사라’호 당시 열 살 무렵의 어린아이부터 청장년층이었던 사람들은 ‘사라’호를 파편적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구술 속에서 ‘사라’호 태풍의 위력과 피해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라’호 구술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멩질 뒷날은 물러레 강 보난에 소왕낭거리옌 헌 디가, 차귀물이렌 헌 디가 셔. 그 폭낭이 그 ᄇᆞ름에이 휙 알녁 밧드레 넘어가난에 낭가젱인 땅드레 가곡 낭은 영 우트레 헤근에 갈라져 불언게. 서이가 들어사 안을 정도라. 그추룩 ᄉᆞᆯ지곡 늙은 폭낭인디 알력 밧드레 그냥 히끗헤엉 갈라지난 꺼꾸로 헤영 낭 우티. ᄇᆞ름에 꺼꺼짐직 안 헌디 ᄌᆞᆫ등으로 딱 꺼꺼졍 그냥 드러눕곡. ᄄᆞ시 그 우녁 편이 ᄒᆞ끌락헌 낭 다 채여 불곡.
(명절 뒷날은 물에 가서 보니깐 ‘소왕낭거리’라고 한 데가, ‘차귀물’이라고 한 데가 있어. 그 팽나무가 그 바람에 휙 아래 밭으로 넘어 가니깐 나뭇가지는 땅으로 가고 나무는 이렇게 위로 해서 누워 버렸어. 셋이 들어야 안을 정도야. 그처럼 두껍고 늙은 팽나무인데 아래 밭으로 그냥 휘청해서 쓰러지니 거꾸로 해서 나무 위에. 바람에 꺾어짐직 않은데 잔등으로 딱 꺾어져서 그냥 드러눕고. 다시 그 위편에 조그마한 나무 다 째어 버리고.)
-임종은(1933년생, 서귀포시 서귀동, 2023. 1. 5. 채록) 구술.
비 치난 창호지가 다 헤싸젼 다 도망가 분 거라. 막 방안트레 비 치난 어디 갈 티가 엇이난. 옛날에 벡장 우이 올라강 앚앙 똑똑똑 털어난, ᄆᆞᄉᆞ완에. 비ᄇᆞ름이 막 무서운 거라. 아무것도 엇인 때난. 벡장 우이 올라간 숨어셰, 하도 무서우난.
(비 들이치니까 창호지가 다 헤어져서 다 도망가 버린 거야. 마구 방안으로 비 들이치니깐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깐. 옛날에 벽장 위에 올라가서 앉아서 똑똑똑 떨었었어, 무서워서. 비바람이 아주 무서운 거야. 아무것도 없을 때니까. 벽장 위에 올라가서 숨었잖니? 하도 무서우니깐.)
-고덕순 구술(1946년생, 조천읍 조천리, 2023. 7. 14. 채록)
□ 연구 책임 현혜림 전문연구원은 “이 책을 통해 65년이 흐른 ‘사라’호를 옛 추억거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라고, ‘사라’호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17점의 사진이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어 이 울림이 도민 사회에 전달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다시 만나는 사라호 태풍》은 제주학연구센터 누리집에서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 비매품. 문의=064-900-1826(현혜림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