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제주학 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에서 수집한 소장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주역사 > 일성록

1067개의 내용이 있습니다.

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11 고문헌 제주(濟州) 3개 고을의 유민(流民)들을 찾아내어 농한기가 되면 원적지(原籍地)로 돌려보내라고 삼남의 도신에게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4
10 고문헌 제주목(濟州牧)은 청피(靑皮)를 따서 모아 판매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2
9 고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조명집(曺命楫)은 월봉(越俸) 1등(等)에 처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3
8 고문헌 제주(濟州)에 곡물을 비축하는 문제는 목사를 엄히 신칙해서 즉시 사 놓은 뒤에 장계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3
7 고문헌 평안도 관찰사는 현충사(顯忠祠)에 나아가 ‘만상의 의사 백대호 등 21인〔灣上義士白大豪等二十一人〕’이라고 위패(位牌)에 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낼 때 돼지와 한 말의 술을 쓰는 것을 정식으로 삼으며 황명(皇明)의 유민(遺民) 임인관(林寅觀) 등 95인에 대해 모두 위패를 만들어 함께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3
6 고문헌 제주 목사(濟州牧使) 조명집(曺命楫)이, 본주(本州)에 사는 백성 조필혁(趙必爀) 등이 표류했다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급하게 장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3
5 고문헌 《춘추(春秋)》를 감각(監刻)할 때 수고한 외각(外閣)의 관원 홍의영(洪儀泳) 및 공장(工匠)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라고 명하고, 이어 외방(外方)의 각수(刻手)는 각각 해당 도신으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수용한 뒤에 거주지, 성명, 수용한 명색(名色)을 내각(內閣)에 보고하게 하고 주자소에 책자를 만들어 두어 훗날 상고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2
4 고문헌 영일 현감(迎日縣監) 정만석(鄭晩錫)이 상소하여 역폐(役弊), 부폐(賦弊), 적폐(糴弊), 해폐(海弊), 산폐(山弊), 삼폐(蔘弊)에 대해 진달하고, 이어 황정(荒政)의 여러 조목과 민고(民庫)의 폐단을 구제하는 방도에 대해 언급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2
3 고문헌 진휼청이 제주(濟州)의 진상품을 영운(領運)해 온 사람들에게 쌀말을 분급했다고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2년 (1798) 4
2 고문헌 별려제(別癘祭) 및 사상자를 위한 위제(慰祭)를 설행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3년 (1799) 3
1 고문헌 창원 부사(昌原府使) 이상도(李尙度)가 상소하여, 본읍의 복사(覆沙)된 곳 200결은 연한을 정하여 세금을 내려 주고, 산허리 이상에서 함부로 경작하는 것은 거듭 금지하고, 통영(統營) 도청창(都廳倉)의 곡물은 본읍에서 주관하게 하고, 환곡을 정퇴할 때는 그 정퇴해 주는 분수(分數)만큼을 다른 것으로 대신 거두어들이고, 여러 도의 민고(民庫)는 관서(關西)의 예에 따라 도신이 맡아서 처리하게 하고, 토산물을 바치는 일은 도신으로 하여금 전부 바로잡게 하고, 여러 도의 수조(收租)는 반드시 당년(當年)의 재해(災害)로 본래 규정에 따라 열거하여 현탈(懸頉)하게 할 것을 청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23년 (1799) 4